직장인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몇 번의 월급을 받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시간이었는지, 마음이었는지 몰라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던 즈음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인터넷 검색창에 지난 시간의 파편 같은 단어들을 입력하고 있었다.
나와 누군가가 함께 머물렀던, 유일했던 커뮤니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그 자리를 더 세련된 이름과 외형의 사이트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 가입했다.
인사를 남기고, 낯선 흐름에 녹아들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게시판 맨 위에는 ‘가이드’니 ‘원칙’이니 하는 글들이 놓여 있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앞서 토해낸 단상들은 흩어진 채, 그저 새로운 얼굴들과의 연결이 시작될 뿐이었다.
정모, 번개, 개인적인 만남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스쳐갔다.
그 세계는 욕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내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모임과 술자리, 끝없는 대화와, 뜬구름 같은 이야기들.
그 안에서 모임은 이따금 애매한 핑계를 타고 ‘모텔’이라 불리는 곳으로 흘러들었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손목이, 다른 누군가의 목덜미 위에 겹쳐졌다.
집단의 숨결, 개인의 침묵, 그리고 이름도 없는 쾌락.
나는 그 흐름에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누군가의 유혹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히, 그것은 내 선택이었다.
처음엔 욕망에 몸을 맡겼고, 그 안에서 방황했지만
안타깝게도 무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이질감과 혼란은 더 짙어졌다.
누구와도 깊어지지 못했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말하는 법조차 모르는, 미숙한 존재였을 뿐이다.
때로는 내가 낯설었고, 때로는 그들이 너무 익숙했다.
내 몸짓을 이해해주길 바랐던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들을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고,
말을 들으려 했던 이들 앞에서 나는 지금처럼 내 욕망의 의미를 전할 말을 아직 갖지 못했다.
그건 마치, 무언가 빠졌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지속되지만 중심을 잃은 떠돎.
그 즈음부터 나는 만남보다는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주친 문장들.
‘진정한 돔’, ‘진정한 섭’, ‘D/s는 이래야 한다’는 단정들.
나는 그 주장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온 길도, 내가 목격한 장면들도, 그들의 말처럼 진정하거나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음만 남은 모텔 방.
서로가 서로의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광경.
그 안엔 아무 원칙도, 아무 감정도 없어보였다.
물론, 그 안에서 조용히 자신들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내 결핍과 혼란을 싸움으로 푸는 사람이었다.
“니들은 다 틀렸어.”
그게 내 방식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곳은 늘 그랬던 것 같다.
흘러가고, 돌아오고, 잠깐 불붙고, 오래 잠잠해지는 나름의 리듬 속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던 세계.
방향을 잃은 건 그곳이 아니라, 내 안의 파도였다.
나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나도 수없이 상처를 줬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상대가 알아서 나를 이해해주길, 어루만져주길 바랐다.
그래서 모진 말을 했고, 마음을 밀어냈다.
목적 없이 헤매는 사이, 깊어질 수 있었던 사람들조차 지치게 만들었다.
그들이 등을 돌리면, 나는 그걸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그 책임을 그 공간에, 그 세계에, 그 시스템에 전가했다.
‘이곳은 틀렸다.’
‘이 구조는 날 받아주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며, 나 자신의 혼란과 모자람을 외면했다.
그곳에서 나는 단지 거부당한 게 아니었다.
쫓겨난 것이었다.
그 심연에서.
그리고
내 안의 심연에서.
내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조차도, 내 편이 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쌓인 그림자만을 품은 채
긴 시간 동안 침묵했고, 살아 있으되,
어떤 방향도 가지지 않은 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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