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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걷다

다섯번째 : 마음이 고이고 고일 때까지

by JinTheStag 2025. 6. 1.

 

 

나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와는 달랐고, 관심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친구가 되었던

무리들과도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내가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고, 내 주장이 가로막히거나 단 한 번의 지적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다.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고, 밖을 향해 열려 있던 문을 하나씩 잠갔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즈음, 어머니의 사랑조차 내게는 작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었다는 걸 알았고, 그 사실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쌓여가던 무언가는 결국 터졌다.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고, 직장을 잃었다. 상사의 머리채를 붙잡고 벽과 바닥에 수차례 핏자국을 남겼다.

그 뒤 무릎 꿇고 사과했고, 합의했고, 쫓겨났다.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니, 술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공허를 술로 채우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 모습이 역겨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크게 다른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술 대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고, 짧은 직장생활 동안 모아둔 것을 천천히 탕진하며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걸음을 멈춘 채 그저 숨 쉬는 것, 그리고 발기를 한다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우울이 밀려오면 그대로 그 작은 관 속에 누웠고, 어쩌다 용기가 솟아오르면 낯선 사람들과 욕정만을 나눈 뒤

다시 그 어두운 관으로 돌아오는 삶의 반복이었다.


 

밖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내 방 안에서는 매일 울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왜 불안한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붙잡아보려 애를 써도 그 정체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나는 더욱 깊은 공포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가끔 누군가 다가오기도 했지만, 이미 괴물처럼 되어가던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또다시 '버림받음'이라 여겼고, 그 감정은 나를 더 깊숙이 침몰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직장의 한 선배에게서 안부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그저 잘 지내는지, 다른 직장을 다니는지 묻는 짧은 메시지였다.

그 인사는 가끔 대화가 되었고, 어느 날은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혔다.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잘 웃고, 당당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이었지만 하는 일이 달라 자주 대화할 일은 없었고, 업무로 스쳐 지나간 짧은 인상뿐이었다.

나는 푸석하게 썩어가던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상하게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응달진 마음에 묘하게 햇빛을 드리우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그대로였다. 그 웃음이 내 그림자를 조금씩 지워내는 듯했다.

소소한 데이트와 만남의 과정은 생략하고 싶다. 그 시절을 곱씹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니까.

한참을 써내려가다 결국 다 지워버렸다.


 

나는 그녀를 알아갈수록 무던히도 괴롭혔다ㅡ 의처증, 모난 뾰족함, 일방적인 집착.

웃기게도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 증상은 심해져갔다.

그녀가 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분노가 터졌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으며,

내 뜻에 따르지 않으면 독설을 뱉었다.

 

물론 그것이 우리 관계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도 여느 커플처럼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내 불안이 심해질 때면, 그 책임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 되었다.

나는 결국 ‘그녀가 왜 나를 사랑하는지’를 믿지 못했고,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공포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로, 때로는 단호함으로, 늘 내 가슴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마음을 바라보라"고.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이 고이고 고일 때까지 그것을 살짝이라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라고.

그녀는 내가 그렇게 울려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출근했고, 내가 다그치고 보채도 자신의 일에 집중했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갈등과 화해를 반복했다.

나는 매번 같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같은 질문만 되뇌었다.

‘왜 나를 사랑하지?’ 혹은 ‘언제 떠날 건가?’

그녀는 대답 대신 하루를 살아내며 나를 견뎌냈고, 나는 그 하루들 덕분에 조금씩 나 자신을 바라보는 힘을 얻어갔다.

나는 오래전부터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억누르고 잠그는 데 익숙했다.

"이해받기 위해선 먼저 견뎌야 한다"는 믿음은 어느샌가 내 사고와 반응의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깨달음은 이해보다는 침입에 가까웠다.

그저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그 어느 날,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치밀어 오른 느낌 하나.

내가 그녀를 스스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

그때, 나는 그녀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 마음이 고이고 고일 때까지, 그 끝이라도 잡아볼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들여다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그 불안의 이유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왜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자꾸 도망치고 싶은지를 묻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냥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읽었던 수많은 자기계발서—제발 사지 마라—와 심리학 책들, 그것만으로는 내 안개의 정체를 거두기엔 역부족이었다.

체계도, 조언자도 없었다.

다만 그때 시작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 달, 또 일 년이 지나며, 분명히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하나둘씩 내 텅 빈 곳에 채워졌다.


 

나는 그 즈음 새 직장을 얻고 다시 사회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도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하지만,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왜 내 곁에 머물러주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녀는 단 한 번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고, 게으르게 무위도식하는 내 모습을 탓한 적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 변화는 그녀가 가장 먼저 알아채 주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잔잔해져서 아쉽다. 하루가 참 스펙타클했는데.”

물론 농담이었겠지.


 

그녀는 말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알려주었다.

내 빈 곳은 내가 채워야 하며, 최소한 무엇이 비어 있는지는 내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녀를 보며 배웠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한 어색함을 느낀다. 그녀 이전의 나, 그리고 이후의 나.

그 괴리감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다.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기억은 여전히 나의 과거를 낯설게 느낀다.

마치 무언가가 끊긴 것 같은 이질감, 내가 아닌 것 같은 감각.


 

우리는 그 뒤로도 몇 해를 더 함께했고, 내가 그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평화로운 이별을 맞이했다.

둘 다 연애 다음의 계획은 없었고, 설렘이 다 사라지기 전에, 냉랭함으로 돌아서는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서로의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그로부터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젠 그 자체로 내 일부가 되었다. 한순간도 멈춘 적 없다. 멈추면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지금은 그 공포조차 사라졌지만.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느낌을 간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말로 표현해보는 시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에게 쏟아냈던 집착과 두려움은 단지 사랑의 왜곡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두려움 앞에 침묵하거나 폭발하거나— 그리고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통해 살아가려 했던 기대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를 증명해야 했던 습관’이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내 자신이 증명한 게 없음에도 곁에 있는 그녀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미처 알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녀가 이 말을 들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켜도 괜찮다.

나를 두려워했던 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

그녀가 주었던 마음을 고이 간직한 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걸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말하고 싶다.


 

당신은 내 연인이었지만, 내 부모이자 스승이었습니다.

내 부모도 주지 못한 인내로 사랑을 가르쳐 주었고, 당신의 하루로 나는 삶의 방향을 다시 배웠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이 글로 내 과거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려 한다.

수없이 스쳐간 장면들과 생각의 파편들이 문장으로 다 담기지 못한 채 흩어졌지만, 이 여정이 아직 끝이 아님을 알기에,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이 며칠, 반추가 아닌 회상과 관찰로 다시 돌아본 시간은, 처음 그 괴로움을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잔잔하게 내 안에 닿았다.

아마 다음 글들은 조금은 분석적인 글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감정의 기록이 끝난 자리에, 이제는 구조와 의미에 대한 질문들이 고개를 들고 있으니까.

 

성향이라는 것이 과거의 상처와 결핍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그것이 어떤 내면의 구조로 쌓였는지를 돌아보는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만약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이가 있다면, 같은 길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길을 내보려는 시도를 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