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며
숨을 쉬려 이곳을 지었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나무처럼.
블로그를 시작하며 몇 편의 글을 써보는 동안,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이 있었다.
사실 십수 년 전부터 막연히 시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할 뚜렷한 이유도, 당위성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만큼 시작도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문득, 이제 놓치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써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은 더 또렷해졌고, 그 김에 이제야 펜을 들게 되었다.
그조차 몇 년을 더 미뤄둔 건지...
처음엔 내 Stag로서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분명히 해보고 싶었다.
이 욕망이 왜 계속 남아 있고, 순간순간 내 뇌리에 떠오르는 건지, 내 삶에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지를 마주해보고 싶었다.
그간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정리할 겸.
이런 내용들은 주로 '안쪽으로 걷다'라는 카테고리에 담았다.
편의상 시간순으로 정리해보려 시도하겠지만 간혹 내 생각의 단편들이 놓여질 수 도 있고,
나에 대한 다양한 글이 존재하겠지만, 누군가와의 행위를 보여주고자 표현하는 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글들은 내가 겪으며 떠올렸던 감정과 감각,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선 : 구조'의 글들을 구상하면서 내 Stag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이벤트들,
그리고 지금 내가 자리하고 있는 'Stag&Vixen'이라는 틀이 기존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지,
그 안에서 어떤 감정과 심리, 관념이 존재하는지를 다루고자 시도하다보니 입안에 맴도는 묘한 석연찮음이 계속 남는다.
안쪽이든 시선이든, 나는 나와 함께 걸었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그 시절의 그들에게도 예의가 아니고, 나 역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곱씹고자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쪽'은 내 성장 과정을 풀어내는 글이라, 상대가 있더라도 그들의 심리나 생각까지 다룰 필요는 없었다.
반면 '시선'에 등장하는 그녀는, 내가 과거에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의 단면들을 하나로 모아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행위와 감정, 그 순간 떠올랐던 생각들을 통해 내 욕망과 그것을 감싸고 조절하는 태도를 비추고 싶었다.
내 감정은 나의 것이니 또렷했지만, 그녀의 감각이나 생각, 감정은 결국 과거에 나누었던
대화를 토대로 한다해도 결국 내 상상에 기대야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종종 내가 붙잡고자 하는 감정들을 더 불확실하게 만들곤 했다.
만약 이 글들이 단순히 읽는 이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런 상상이나 망상이 문제가 될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포르노그라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건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안의 욕망을 명확히 하기 위한 시도니까.
이 글들을 통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성향이든, 정체성이든, 라이프스타일이든—그 이름이 뭐든 간에—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밝혀보고 싶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말하고 싶은지를, 좀 더 선명하게 하고 싶다.
아마 이런 고민들은 앞으로도 내 글들을 쓸 때마다 발목을 잡겠지만 그렇다고 해 시작조차 못 하고 이 블로그를 다시 덮는 일은 피하고 싶다.
지금부터의 방향이 변하든, 그게 진화든 퇴보든, 내 자신을 지켜보는 일엔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혹시 이 글들을 마주하게 될 누군가가 있다면, 그 점 하나만은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몇 자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