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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점점 사라지는 말들 – 극우의 부상, 인본의 황혼

by JinTheStag 2025. 6. 20.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잔혹한 전쟁, 학살, 제국주의의 광기를 목격한 끝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려 했다.

그 흐름은, 아주 잠시, 시대를 진보의 방향으로 밀어올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가.

시오니즘을 앞세운 이스라엘, 신정을 앞세운 이란—

종교와 민족, 역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절대화한 두 극단이

거대한 무력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세계는 분명히 ‘극우’라는 늪으로 천천히, 그러나 뚜렷하게 침잠 중이다.

 

단지 중동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 미국의 포퓰리즘, 아시아 각국의 권위주의 강화.

모두가 점점 더 뚜렷한 경계와 닫힌 공동체를 외치며,

‘우리는 누구인가’보다 ‘우리가 아닌 자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소통의 언어’가 하나씩 지워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 분명히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목놓아 외친다. 자신의 귀는 닫은채,

신념이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더 이상 말이 닿지 않는 벽을 쌓는다.

 

누군가는 그리 말하겠지.

“그럴 수밖에 없지, 저 쪽이 저렇게 나오는데.”

 

하지만 그 ‘저 쪽’도 똑같이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너희가 먼저 그렇게 나왔잖아.”

 

이 끝없는 거울놀이는, 결국 서로를 짓밟는 반복만 남긴다.

 

우리는 다시, 말이 사라진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소통이 단절된 곳에 폭력이 자란다는 사실을

70년 전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었는데,

그 기억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일까.

 

무력보다 무서운 건,

‘말하지 않기로 결정된 사회’다.

그 침묵 속에서 자라나는 건 언제나,

증오와 공포, 그리고 총칼뿐이다.

 


 

나는 인본주의를 믿었다.

아니, 사랑해왔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존엄은 어떤 이념이나 체제보다 우선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단지 사상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버티게 해준 가치였고,

세상에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 그 믿음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걸 느낀다.

사람이 아닌 이익이, 존엄이 아닌 공포가,

소통이 아닌 혐오가 정치를 움직이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쉽게 누군가를 ‘적’이라 부른다.

그 적 앞에서는 모든 말이 사라지고,

오직 구호만이 남는다.

 

인본주의는 그렇게 점점 입을 잃고 있다.

 

마치 한때 화사하게 피어났던 꽃이,

세상의 연기로 질식하듯

하나둘씩 고개를 떨구는 것처럼.

 

그 무너짐 앞에서

나는 슬프다.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던 그 믿음이

이토록 쉽게 부정당하고,

이토록 조용히 시들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만 같다.